동양에서는 소나무(松)는 나무 중에도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다. 솔 송(松)을 해자 해보면 나무 목(木)에 벼슬이름 공(公)이다. 소나무는 동수(同樹)교배를 하지 않아 인격을 갖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소나무는 솔잎부터 뿌리까지 모두 쓸모가 있는 유용목이며 송이의 모태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늘 푸른 상징 그린(Green)이다. 드디어 소나무 섬(松島)이 녹색기후기금(GCF:Green Climate Fund)사무국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12. 10. 20 낮 12시 송도 컨벤시아.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 유치 도시로 송도가 발표되자 한 유럽 국가의 대표는 “쿠데타가 발생했다”고 했다. 환경 분야 선진국인 독일을 꺾은 한국의 대역전극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번듯한 국제기구로 한국에 본부를 두게 되는 것은 GCF가 사실상 처음이다. 20세기 국제사회 이슈가 빈곤 추방, 보건 향상이었다면 21세기 최대 과제는 기후·에너지 문제로 바뀌어가고 있어 GCF사무국의 송도 유치는 더욱 의미가 크다. 내년 GCF 사무국은 수백 명 수준으로 출범하지만 앞으로 세계은행(WB:직원 1만2000명),아시아개발기금(ADB:3000명),국제통화기금(IMF:2500명)의 기능을 대체해 가는 슈퍼 국제원조기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국제기구다.
대한민국이 앞장서 만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지난해 10월18일 국제기구로 전환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어젠다(Agenda)로 설정한 녹색성장을 국제적으로 전파시킨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GGGI는 2010년 우리나라의 주도로 설립되어 덴마크, 호주, UAE 등 여러 국가와 국제기구의 지원으로 금년도 예산이 4000만 달러에 이르며 현재 17개 개도국에서 경제발전과 기후변화를 동시에 대처하는 녹색성장프로그램을 세워주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국제기구로서 출범하는 GGGI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첫째 공여국의 확보이다. 국제기구의 사활은 무엇보다 안정적 재정 확보인데 18개의 회원국 중 8개국이 공여국가이며 앞으로도 추가 공여 국가를 확보할 예정이다. 또한 송도에 들어설 GCF는 GGGI의 재정적 미래를 한층 밝게 할 것이다. 둘째, GGGI는 민·관 혼합(hybrid)형 기구라는 점이다. 18개 회원국뿐 아니라 기업체, 학계, 시민단체 대표들도 GGGI의 의사 결정기구인 이사회 구성에 3분의 1의 지분을 갖게 된다. 셋째, GGGI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 근무라는 고급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인 개도국의 개발 문제와 기후변화를 포괄적으로 대처하는 ‘녹색성장’의 글로벌 어젠다 설정을 주도함으로써 우리의 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국격 상승에도 기여할 것이다. 넷째, GGGI는 선진국·개도국이라는 국제사회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뜻을 같이하는 중견국가들을 묶어 우리나라가 주도하여 만든 국제기구이다. 우리가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녹색성장이라는 기회로 활용하여 GGGI라는 국제기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자기 입장 반영 기대가 GCF의 성공 요인
GCF가 왜 필요한지는 온실 기체인 이산화탄소(CO₂)가 갖는 확산성(擴散性)과 축적성(蓄積性)의 두 특성을 갖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런 확산성과 축적성 때문에 어떤 나라 혼자 아무리 기(氣)를 써봐야 다른 나라가 같이 노력해주지 않으면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00~200년 전부터 쌓여왔기 때문에 지금 배출을 줄이기 시작한다고 올라가던 기온이 금방 떨어지진 않는다. 모든 나라가 오랜 기간 함께 배출량을 줄여가야 온난화 저지가 가능하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은 국민 1인당 연간 10톤 정도, 미국은 2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그래서 풍요로운 소비를 누려왔다. 반면 2~3톤밖에 배출하지 못하는 개도국이 허다하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의 75%는 선진국 책임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의 피해는 주로 개발도상국이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농업 비중이 크고 온난화에 견딜 수 있는 재정과 인프라가 부족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이 개도국들에게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같은 수준으로 노력하자’고 하는 말은 먹혀들 수 없다. 그건 ‘너희 국민은 앞으로도 계속 자동차 타지 말고 냉장고 쓰지 말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힘을 합쳐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되 그 과정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을 도와줘야 한다. 그걸 위해 세계 190여개 기후협약 가입국가들이 코펜하겐(2009년)·칸쿤(2010)·더반(2011)총회에서 녹색기후기금 발족에 합의를 한 것이다. 한국은 온난화의 역사적 책임이 선진국보다 가벼우면서 원조 받던 처지에서 원조하는 입장으로 바뀐 나라다.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의 양쪽으로부터 서로 자기네 입장을 반영해줄 거라는 기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이번 GCF 유치 성공의 한 이유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녹색금융 허브’ 는 기금 조달과 운영이 미래를 좌우
사실 GCF는 아직 ‘가능성’일 뿐이다. 먼저 직시해야 할 사실은 GCF의 재원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GCF 설립을 승인한 2010년 칸쿤 합의는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를 조성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약속이 매년 1000억 달러씩 2020년까지 조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2020년에 이르러 비로소 연간 조달금액을 1000억 달러에 이르게 한다는 것인지에 관하여 논란 중이다. 또 이 재원 모두가 GCF 기금이 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칸쿤 합의 자체는 어디까지나 목표일뿐이다. 기후변화의 위중함과 그 대응의 필요성에 대해 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곤 하지만 미국과 EU의 재정난을 극복할 정도로 공고한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GCF 기금 조성을 위해 누가 얼마나 낼지에 관한 합의도 전무한 실정이다. GCF가 가진 가능성의 실현 여부와 정도는 우리나라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선·후진국 사이의 다툼은 결국 그 소요 재원을 누가 조달하느냐 하는 재정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GCF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된 국제기구인데, 그 성공의 관건은 선·후진국 모두가 교감할 수 있는 형태로 GCF 기금의 조달과 운영 방식을 고안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선진국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재원 조달과 개도국의 재원사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조하는 반면, 개도국은 선진국의 추가적·의무적 재원조달과 그에 대한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양자의 요구가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GCF 기금의 조달과 운영방식을 ‘새마을운동’을 ‘롤 모델’로 삼아 만들어내야 한다. 또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재원의 규모나 어려운 세계경제를 생각하면, 민간 부문의 재원이 GCF로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재 엄청난 자금이 신흥 경제대국의 에너지 시장에 투자되고 있는데, 정부는 이러한 자금을 GCF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기구의 재정에 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한 까닭이다.
GCF 사무국의 조직과 운영에서 우리나라의 입지가 확립되도록 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과제이다. GCF 사무국은 개도국이 신청한 감축·적응 프로젝트를 선별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인력자원을 파악하고 국내에서 공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GCF 사무국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런 법제도적 정비는 향후 기대되는 유관 국제기구의 유치와 녹색금융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선·후진국 사이의 가교(架橋) 역할을 자임해 온 우리나라의 ‘그린(Green)리더십’을 기대해본다.
‘아시아의 국제기구 허브’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국제기구 본부를 유치하게 되면 올림픽 같은 단발성 행사를 개최하는 것과는 달리 유치 도시에 1년 내내 고급 상주 인력과 국제 유동 인구가 생겨나게 된다. 국제기구 유치에 따르는 지원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국제 감각을 갖춘 대한민국 미래세대가 국제기구로 진출할 기회도 넓어질 것이다. 송도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있지만 그동안 외국자본 유치가 기대만큼 원활하지 않아 고층 빌딩들만 덩그러니 올라가 있을 뿐 도시 활력은 찾기 힘든 상태다. 글로벌 기업의 연구 개발 부서와 외국 대학, 연구소 등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병원·학교 같은 도시 인프라와 외국 자본에 대한 세제지원 등에서 홍콩·싱가포르 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인천시는 GCF 사무국 유치를 계기로 송도 거주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병원, 국제학교, 호텔 등이 들어설 수 있게 관련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어야 한다. 외국인으로서 송도에 산다는 것이 뉴욕·파리·제네바에 사는 것보다 편리하고 쾌적하다고 느끼도록 교통·쇼핑·언어·문화 인프라를 혁신해야 한다.
GCF의 송도 유치가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결과에 따라 다른 국제기구들도 세계 본부나 지역 사무소를 송도에 둘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GCF 송도 유치는 대한민국과 인천 송도가 새로운 ‘아시아의 국제기구 허브’로 떠오를 수 있는지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고도 할 수 있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