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 12:35:28.0

기획/ 불황보다 일감몰아주기가 더 무섭다

4대그룹 물류분야 경쟁입찰 비중 오히려 뒷걸음질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 내년 시행…기업들 ‘물량 규제’ 요구

 

●●●대선후보들이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경제민주화로 부의 쏠림현상이 개선될 수 있을 지 관심이다. 특히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행태는 국내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경제계는 입을 모은다.

국내 해운물류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해운물류기업들은 몇 년 전부터 대형 화주기업들의 물류산업 진출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왔다. 대기업들의 물류자회사인 이른바 2자물류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기존 전문물류기업들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게 국내 물류업계의 판단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2자물류기업들은 모회사의 물량을 기반으로 급속한 발전을 해온 반면 전문물류기업들은 사세가 위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2자물류기업의 성장은 곧 수십년간 국내 물류시장을 견인해온 토종물류기업들의 고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상황은 심각하다.

현재 대형 화주기업들 치고 물류자회사를 안 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재계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이 각각 삼성전자로지텍과 현대글로비스를 두고 있다.

또 LG전자는 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 롯데는 롯데로지스틱스, GS는 STS로지스틱스, 동국제강은 인터지스, 효성은 효성트랜스월드, 세아그룹은 세아로지스를 각각 물류자회사로 두고 있다. LG그룹은 방계 물류회사로 범한판토스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물동량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기업들은 대부분 물류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20대 대기업 중 제조기업 치고 자체 물류기업을 안 갖고 있는 곳이 없다”며 “물류분야는 자본금이 크게 안 들어 진입이 쉬운 데다 모회사 물량을 바탕으로 급성장을 할 수 있어 대기업들이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비스 10년사이 25배 성장

2자물류기업들은 모회사 물량을 동력으로 최근 몇 년 간 큰 성장을 일궈왔다. 이재균 의원이 지난 국토해양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2자 물류기업 중 현대글로비스와 삼성전자로지텍 하이로지스틱스 롯데로지스틱스 STS로지스틱스 효성트랜스월드 세아로지스 등의 그룹 내부거래 비중은 80%를 훌쩍 넘는다. 현대글로비스가 86.8%, 삼성전자로지텍이 92.9%를 기록했다. STS로지스틱스는 매출액 전액을 그룹사와의 거래를 통해 거둔 것으로 파악됐다. 그룹규모가 클수록 내부거래 비중도 높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계열사간 내부거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물류분야의 내부거래 비중은 83%로 69%의 광고나 64%의 시스템통합(SI)에 비해 가장 높았다. 특히 수의계약 비중은 98%로, 광고(85%), SI(57%)와는 비교가 안 됐다. 2자물류기업들은 수의계약으로 대부분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2자물류기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현대글로비스다. 이 회사는 성장률면에서 다른 물류기업들을 압도한다. 이 회사 매출액(연결제무제표기준)은 최근 10년간 25배 이상 성장했다. 2002년 3742억원에서 지난해 9조5460억원으로 무려 2551%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 결과 현대글로비스는 외형 면에서 국내 2위 선사인 현대상선을 크게 앞질렀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액 7조4207억원에 머물렀다. 현대글로비스에 비해 2조원 이상 뒤처진 실적이다. 2002년만 해도 현대상선은 매출액 5조원으로 현대글로비스를 13배 이상 앞섰었다.

이밖에 삼성전자로지텍은 2002년 2262억원에서 지난해 1조2582억원으로 556%, 범한판토스는 2002년 4425억원에서 지난해 1조8935억원으로 427%의 매출액 신장을 각각 거뒀다. 두 기업들도 현대글로비스보다는 낮지만 해운물류시장 불황의 그늘 속에서도 빠른 외형 확대를 일궜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폐단이 공론화된 이후에도 물류분야에서는 일감몰아주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정거래위 조사에 따르면 올해 4~7월 4개월 동안 10대그룹이 물류 분야에서 경쟁입찰한 금액 비율은 18%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에 비해 오히려 2%포인트 감소했다. 4대그룹은 21%에서 19%로 감소했으며 5~10대그룹은 15%로 변화가 없었다.

또 10대그룹의 물류분야 중소독립기업 직접발주 금액은 2410억원으로, 1년 전의 2667억원에 비해 10%로 감소했다. 이 중 4대그룹은 16% 감소한 반면 5~10대그룹은 10% 증가했다. 공정위는 이를 두고 물류분야의 총 계약금액이 2.3%포인트 감소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4대그룹은 감소하고 나머지 그룹은 늘어났다는 점에서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행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글로벌기업 육성대상기업으로 2자물류기업들이 다수 참여하면서 3자물류 시장을 확대하려고 한다는 점은 토종 물류기업들에겐 또 다른 걱정거리다. 2자물류기업들이 그룹사 물량을 기반으로 확보한 운임경쟁력을 무기로 3자물류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전문물류기업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대상엔 현대글로비스, 범한판토스, CJ GLS 등 대형 화주기업 계열의 물류자회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물량규제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해법

한 중견물류기업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출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사실 물류 분야의 대기업 진출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3자물류 비중을 늘린다는 명목하에 현대자동차와 거래하는 협력업체(벤더)들 물량까지 대거 끌어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부는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제도 도입에 고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을 마련했다.

모범기준은 ▲계열회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행위 금지 ▲비계열 독립기업에 대한 사업기회 개방 ▲거래상대방 선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 등 거래상대방 선정의 3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이 제도는 지난 7월1일부터 시행됐다.

이와 함께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가 내년부터 시행된다.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 적용 대상은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정상거래 비율을 초과한(30%) 일감을 받은 수혜법인 지배주주와 그 친족(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중 사업연도 말 기준으로 수혜법인에 3% 이상을 출자한 대주주(개인 또는 법인) 등이다. 또 수혜법인에 일감을 몰아준 특수관계법인은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에 해당되는 법인으로 비영리법인도 포함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 법인세 신고납부가 마무리되는 내년 3월 이후 과세제도가 실질적으로 시행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물류업계에선 과세를 통한 규제보다 거래 물량을 제한하는 실질적인 규제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류기업 임원은 “정부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제재를 한다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 미지수”라며 “전체 물량의 50% 이상을 계열사와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구체적인 규제가 실효성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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