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2 10:52:40.0

세계 자본주의는 바뀌는데, 눈치 없는 한국 재벌

칼럼/수필가 白岩 이경순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3월24일 포럼 리셉션에서 “우리는 죄를 지었다.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철 지난 자본주의 시스템이 우리를 위기로 내몰았다”며 “단순한 시스템 정비가 아니라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슈밥 회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도사로 ‘세계화를 통한 인류 번영’을 주창해왔던 인물이다. 그런 슈밥 회장이 죄인을 자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금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특히 1970년대 후반 본격 도입된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개인과 기업의 혁신을 통해 국가의 부(富)를 늘리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실적을 올렸다. 이 경제 시스템은 냉전에서 공산주의라는 경쟁 시스템을 몰락으로 몰아넣었고, 구(舊)공산권 국가와 개발도상국들도 잇따라 이 체제를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세계 경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했고, 수십억 인구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 ‘역사의 종말’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했던 말이다.

그러나 이 체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지나친 무절제·탐욕 때문에 경기 과열과 거품을 낳으며 위기를 불러왔다. 최상위 1% 계층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차지하는 극단적 ‘승자 독식’ 현상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그 결과 경쟁에서 탈락한 99%가 반발하면서 ‘월가(街)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와 같은 반체제 저항운동이 최근 전 세계로 확산됐다. 세계경제포럼 창립자 슈밥 회장의 발언은 이런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시장경제 시스템을 채택해 50여년의 짧은 기간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재벌 대기업들이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력의 재벌 집중이 심화돼 중소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빈부격차·양극화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재벌 대기업들의 2세, 3세, 4세들은 끊임없이 분식회계·편법상속·주가조작으로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사고 있다. 돈벌이가 될 만한 사업에 마구잡이로 뛰어들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시장을 빼앗고, 사회적 책임과 기여에도 무관심하다.

한국 재벌들은 윤리만이 아니라 눈치조차 없다. 천둥과 번개를 속에 감춘 반(反)재벌의 먹구름이 몰려오는데도 재벌가 3세, 4세들이 빵집과 커피전문점을 차리고, 라면· 물 티슈 수입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선진국 부호들이 “체제 안정을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겠다”고 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머지않아 거센 폭풍우를 맞게 될 것이고, 그 첫번째 희생자는 재벌이 될지 모른다.

민심이 자못 흉흉하다. 사회양극화에서 비롯된 생활고에다 정권 핵심부의 부패가 겹친 ‘정치의 계절’은 집권세력에 대한 응징투표로 현실화될 터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박근혜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고전하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고공 행진하는 근원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못살겠다, 갈아 보자’ ‘보기 싫다, 바꿔 보자’의 정치적 태풍이 임박했다.

그런 정치·사회적 태풍이 겨냥하는 제2의 과녁은 단연 재벌이다. 대기업집단이 한국적 앙시앵 레짐의 중추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반(反)재벌 정서와 결합한 ‘재벌 때리기’는 경제정의의 이름으로 날개를 달고 있다. 새누리당 비대위가 대표적 재벌 개혁론자인 김종인 전(前) 의원을 영입하고 민주통합당 개편 과정에서 재벌 해체 구호가 난무한 게 상징적인 사례다. 안철수 교수가 한국의 기업생태계를 ‘삼성동물원, LG동물원’이라고 비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누가 집권하건 대기업집단에는 삭풍의 계절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재벌들 자신에게 큰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반작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2·3세 경영인이 해외시장의 강자들과 대결하는 대신 라면·순대·떡볶이·제과업까지 진출해 안방의 손쉬운 돈벌이에 치중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고사시키고 있다. ‘기업 프렌들리’인 이명박 정부조차 ‘기업윤리에 반(反)하는 일’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그 결과 2003년 전국에 1만8000개였던 동네 빵집은 2011년 말 4000여 곳으로 급감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 사건’은 거대 공룡이 된 재계가 방향감각을 잃은 상징적 경우다. 대기업집단을 대변하는 전경련이 ‘기업가 정신’을 앞세워 당국의 선처를 요구했을 때 한 기업인은 “배임·횡령·비자금 조성이 기업가 정신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SK사태의 정곡을 찌른 바 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과 LG가 세탁기·평판TV·노트북 시장에서 담합해 얻은 부당이익에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은 이 담합 행위를 그룹 차원의 ‘해사(害社) 행위’로 규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단위 회사 경영진에 대한 최고 평가기준이 실적 내기인 한, 불공정거래의 유혹이 줄기는 쉽지 않다.

2008년 이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과 삼성전자 협력사들의 영업이익률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데서 보듯 대기업과 중소 하도급기업은 상생 관계라기보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에 가깝다. 현대기아차와 하도급기업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건강한 기업생태계의 길이 아직 먼 게 현실이다. 게다가 현대기아차는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서 신차 출시 때마다 가격을 인상하면서도 리콜 등의 서비스에는 인색해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왔다.

이젠 대기업집단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승자독식과 강자의 횡포가 지배하는 시장생태계에 대한 비판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고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압도적인 시대흐름에 맞서는 건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끈 대기업집단에 양가적(兩價的)인 감정을 갖는다. 일자리와 국부를 창출한 그 노고를 인정하고 한국 기업이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인 걸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동시에 재벌이 상생과 공정을 해치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지 않는가 하는 경계심과 걱정이 있다. 대기업집단은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

비록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 우리는 세계에 대해 무지했다. 사상 최초로 그 한계를 돌파해 지구촌 전체를 휘젓고 다닌 한국인이 바로 기업가들이다. 미국의 한 자동차 전문 조사업체는 ‘2011 미국시장 업체별 평가’에서 현대기아차를 1위로 뽑았다. 국민의 희생과 노동자들의 헌신에 특유의 기업가 정신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것이다. 우리 역사상 어느 분야에서도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세계 초(超)일류의 경이로운 성과를 이룬 게 바로 삼성전자이기도 하다.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한국현대사를 도약시킨 한 주체인 셈이다. 지금 ‘재벌 때리기’를 우려하고 개탄만 하는 건 기업의 길이 아니다. 상생과 공정거래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업가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보라! 경주 최부자가 왜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흉년에 논 사지 않고’ ‘파장 때 물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지 말이다. 자기 돈 아깝게 여기지 않는 호인이라 그랬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지 않았더라면 남인(南人) 집안이었던 최부자는 집권당인 노론(老論)으로부터 꼬투리를 잡혀 역적으로 몰리거나 재산을 몰수당했을 것이다. 조선 유교는 부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 종교였다. 소론(少論) 당수였던 논산의 명재(明齋) 윤증(尹拯)이 눈을 부라리면서 “우리 집안 윤씨는 서민들이 먹고사는 업종인 양잠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재벌 자제들이 ‘서민 먹이’인 제과·라면·순대·두부까지 손대서야 되겠는가?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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