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2 16:00

더 세월(1)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1. 출항


전날 오후 인천항 앞바다는 안개가 짙게 깔렸다.

바다는 점점 어두워지고 안개는 걷힐 줄 몰랐다. 여객터미널에 정박해 있던 배들은 하나 둘 출항을 포기했다. 출항하지 못한 배 열 척 중에 세월호가 있었다.

시간은 흘렀다.

출항하기로 했던 오후 7시를 지나면서 세월호 승무원들의 마음도 급해졌다. 목적지 제주항에 갔다 오려면 서둘러야 한다. 부지런히 운임을 벌어 천주(天主) 회장님께 진상해야 천국으로 가는 길이 순탄할 거라고 믿으면서.

오후 9시 무렵 VHF 무선을 통하여 인천항만청은 저시정주의보(시정 500미터 이하 발령)의 해제를 알리는 안내메시지를 각 선박에 내보냈다.

갑판에서 출항준비를 하고 있던 1항사(1등 항해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본사 해무부장의 전화다.

“안개주의보가 해제됐으니 빨리 출항하세요.”

핸드폰 목소리는 끊일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화물적재량은 이제껏 하던 대로 요령껏 기재하시고….”

안개주의보 해제는 본사가 더 빨리 아는 것 같다. 1항사는 본사 지시를 선장에게 보고했다. 선장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그럼 그래야지’ 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그래도 정말 안개가 걷혔는지 궁금해서 1항사에게 물었다.

“다른 배도 출항준비를 하는 건가?”

“아닙니다. 다들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출항할 것 같습니다.”

“그래? 세월호는 크니까 그 배들이랑 다르지…. 상관없이 우린 출항준비!”

나이 칠십에 촉탁근무는 감지덕지다.

“충성!”

선장의 마음속에선 회사를 향한 감사의 거수경례가 이마까지 올라갔다.

길이 145미터 폭 22미터, 총톤수 6,825톤이라면 한국에서 제일 큰 여객선 아닌가. 선장은 이 배를 자기와 같은 늙은이에게 맡긴 회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배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탑승인원 476명 중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생 325명을 비롯해 인솔교사 13명, 회갑 기념여행을 가는 인천의 모 초등학교 동창생 17명이 끼어 있다.

탑승자 중에 좀 특이한 승객이 있다.

해운컨설팅 회사의 사장 서정민은 5층 객실 2인실에 머물렀다. 제주항 물류창고 건설을 조언하기 위해 발주사의 기획실장 이순애와 함께 제주도로 현장답사를 가는 길이다.

두 남녀는 배의 정박대기시간을 이용해 서 사장의 방에서 앞으로 건설할 물류창고의 설계도면을 검토하고 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배가 움직였다.

“정박해 있는 배가 왜 이렇게 출렁거리지?”

도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에 갑자기 배가 흔들리자 서정민 사장은 바깥 부두 상황이 궁금했다. 그러나 이순애 실장은,

“물 위에 떠 있는 배가 움직이는 건 당연하잖아요. 사장님.”

태연하게 서 사장을 쳐다보았다.

“큰 배가 옆을 지나갈 때 흔들리긴 하지만 지금은…?”

작은 배가 아닌 큰 배가 지나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서 사장은 어딘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작은 배 통행에도 흔들린다면 배는 부뚜막에 애 올려놓은 것같이 불안한 일이다.

서정민 사장은 해양계 대학을 나온 마도로스 출신 사업가다. 해군 장교로 복무한 뒤 외항선 선장과 해운회사 중역의 경력을 쌓고 얼마 전 회사를 창업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45세의 나이답게 사업에 도전적이다. 컨설팅 사업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신에게 맞춤옷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적성에 맞는 것이 없을 정도다.

39세의 이순애 실장은 물류창고업을 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회사 기획업무를 책임지게 되었다. 소규모 회사에서 큰 임무는 아니지만 남자같이 박력 있다고 해서 아버지는 장녀를 대뜸 기획실장으로 앉혔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사업은 활발히 진행될 거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배는 오후 9시경 출항하여 인천대교 아래를 지났다.

다리를 지나자마자 단체 생일파티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갑판에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었다. 영상통화로 가족들에게 불꽃놀이 장면을 전송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불꽃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배 안에 머무는 아이들도 있었다. 배 곳곳에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거나 3층에 있는 오락실이나 노래방에서 각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서정민과 이순애는 출항 후에도 남자의 방에서 한참 동안 설계도면을 검토하고 있다. 둘은 사업상 발주자와 수주자의 갑을관계이지만 일을 함께 추진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동반자이기도 하다.

비즈니스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두 사람은 여행 기분을 내기로 했다. 이순애가 매점에서 맥주를 사가지고 왔다. 갑판 위 아이들의 불꽃놀이가 시끄러워도 그들은 맥주 맛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웬만큼 마신 것 같아요. 서 사장님. 이제 저는 객실로 돌아갈래요.”

이순애는 객실 4층 특실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모처럼 여자의 향기를 느껴보려던 서정민은 이대로 헤어지는 게 불면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남아 있는 네 병의 맥주도 아까웠다.

“아직 자정도 안 됐는데 마시던 거나 다 마시고 가세요. 이 실장님과 술잔을 앞에 두고 대화할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순애의 기분은 이상해졌다.

다가오는 5월 1일 메이데이가 그녀의 이혼 일주년이 된다. 남편은 메이데이를 이혼 디데이로 정했었다. 그녀는 순순히 합의해 주었다.

이혼 후 남성으로부터 권주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앞에 앉아 있는 서정민이 모처럼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꾸 몽롱해지려 한다.

“더 마시면 전 이 방에서 자야 해요.”

그녀는 술에 약했다. 혀가 기억 니은으로 조금씩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이 남자가 부인과 알콩달콩 깨소금 같은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을 상상하면 갑자기 질투가 고개를 치밀고 일어났다. 술이 더 취하는 것 같았다.

질투는 알코올을 분출하는가.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여자의 엉덩이가 다시 내려앉은 걸 확인한 서정민은 급히 그녀의 잔을 채웠다. 맥주의 거품이 잔을 넘어 흘러내렸다.

“남은 네 병도 어쨌든 다 비워야 합니다.”

“그럼 제가 한 병 마실 테니 사장님은 세 병 드세요.”

“저는 두 병만 마시겠습니다. 제 아들이 둘이니까 그놈들 몫까지.”

서정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

“그럼 저는 한 병 마실게요. 딸 하나 있으니까요.”

초등학교 다니는 예쁜 딸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럼 한 병이 남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장님은 사모님 것도 드세요. 그럼 세 병 되잖아요.”

이순애가 말했다.

“그건 불공평합니다. 이 실장님도 남편 것까지 드셔야죠.”

“전 이혼녀인데…. 아?”

취기가 실수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덮었다.

“왜 이러지? 제가 뭐라 했어요?”

“아무것도… 그냥 딸과 둘이서 산다고 하셨습니다. 하하.”

뜻하지 않게 개인의 가정사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신기함을 넘어서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서정민은 그녀의 부끄러움을 무시하고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녀의 잔에 다시 맥주를 채우면서 말을 이었다.

“이런 마당에 저도 고백해야겠네요. 전 6개월째 별거 중입니다. 그러니 마지막 한 병은 반씩 나눠 마시면 어떨까요.”

두 사람은 데이트 기분에 젖어들었고, 몸과 마음이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맥주병은 다 비워졌고 바닥에 뒹구는 빈병도 보였다.

이순애는 많이 취했다.

그녀는 팔 하나를 옆 침대 모서리에 두고 허리를 허우적거렸다. 침대에 기대려는 것인지 올라가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몸은 이미 중심을 잃고 매트를 스프링 삼아 튕기곤 했다. 서정민이 그녀의 허리를 잡지 않았다면 그녀는 바닥에 뒹구는 병에 미끄러질 뻔했다.

“이 실장님, 지금 두 신데…. 이제 일어나세요. 제가 4층 객실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제가 취했나요?”

그녀는 취기가 만드는 미소를 보이며 얌전히 일어났다.

취객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는 모습이다.

“이런 애매한 기분은 생전 처음 느껴보네요.”

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누군가 허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삶을 이렇게 의지하는 방법도 있구나, 모처럼 든든함을 느꼈다.

“순애 씨, 좋은 꿈!”

서정민이 방문을 닫고 나오기 전 그녀의 발끝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불을 끄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이순애는 취기에 못 이겨 잠들고 말았다.

5층 객실로 돌아온 서정민.

스커틀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어둠에 덮여 마치 먹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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