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2 19:40

“채무자 회생방안 고려않고 한진해운 사태 대응한 건 뼈아픈 일”

한진해운 파산백서 발표, 하역기금 조성 입법청원서 전달


지난 2016년 8월31일, 세계 7위의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 정기선시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진해운에 화물을 맡겼던 화주들은 선적한 화물이 채권단에게 사실상 압류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진해운과 선복을 공유했던 CKYHE 얼라이언스(코스코 케이라인 양밍 에버그린)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하루 뒤인 9월1일 한진해운을 얼라이언스에서 조기 퇴출시켰다. ‘얼라이언스’라는 마지막 숨통을 놓아버린 정부의 판단은 한국해운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우를 범했다.

한진해운의 파산 원인을 체계적이고 다각적으로 해부한 ‘한진해운 파산백서’가 오랜 연구 끝에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범 한진가의 경영미숙에 따른 오판과 정부의 해운정책 전략 부재 및 대응미숙이라는 핵심 원인 외에도 ‘채무자 회생방안’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활용하지 못해 결국 최악의 결과인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김인현 교수는 지난달 26일 열린 한진해운 파산백서 결과 발표회에서 “(CKYHE) 얼라이언스 내부약정은 무효일 가능성이 있었다. 한진해운이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전 얼라이언스와 상의를 했어야 한다”며 “(얼라이언스) 퇴출결정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를 법원에 제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세계 각국의 하역사들이 미수금과 현금을 요구하자 한진해운 선박들이 대체 항구로 이동하거나 외항에서 대기했고, 결국 운송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김인현 교수


손해배상액이 크지 않았으면 한진해운을 인수할 회사가 있었을 거란 가정이 상존한다는 점에서 마지막 항차의 화물을 하역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했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정부가 사전에 마지막 항차의 하역작업비를 위한 기금을 마련해 미수금을 지불했으면 한진해운이 파산하진 않았을 거란 설명이다.

또 채권을 발행해 하역작업비를 메울 수 있도록 공익채권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무자회생법상 공익채권으로 인정되면 채권자가 비용을 100%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미국은 하역비기금 조성을 쉬핑액트(해운법)에 넣었는데, 우리나라는 또 회생절차에 들어가겠느냐는 생각으로 아직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디얼라이언스 등 주요 얼라이언스들은 이 조항을 모두 반영한 상태다. 현대상선에겐 디얼라이언스가 있지만 SM상선은 얼라이언스에 소속돼 있지 않아 (해운시장에서) 신용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김인현 교수(왼쪽)가 김성찬 의원실 박상진 보좌관에게 입법청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이날 김 교수는 해운법상 마지막 항차에 대한 하역기금제도를 강제화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제27조의2) 및 시행령 입법청원서를 국회 농해수위 김성찬(자유한국당, 창원시 진해구) 의원실 박상진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개정안은 원양선사가 마지막 항차의 하역비 지급을 보장하는 보험이나 공제, 기금제도에 가입하는 내용으로, 하역사가 밀린 하역비에 대해 보험자 공제업자 기금운영자 등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보좌관은 “김 의원도 충분히 아는 사안이다. 검토기간은 한 달 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며, 9월 중순인 추석이 지나고 나면 법안이 제대로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박압류 문제 도마 위 올라

김 교수는 이날 한진해운 사태를 교훈삼아 선박압류에 대한 대응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선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채무자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등은 동결된다. 한진해운이 국적취득부나용선(BBCHP) 선박을 60여척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채권자들이 이 선박들을 강제 압류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한진해운은 채무자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중단하는 채무자회생법 58조에서 BBCHP는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받음에 따라 강제집행을 당하게 됐다. 우리나라 해운사의 BBCHP 선박 보유 점유율이 70% 이상 육박한다는 점에서 시한폭탄과 같은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용선자의 소유권을 한정적으로 인정하는 입법안을 마련해 강제집행이 아닌 가압류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시행한 스테이오더(압류금지명령)는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스테이오더는 우리나라에서 회생절차를 밟으면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한국의 회생절차효력을 모두 동등하게 인정해주는 것을 뜻한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가 들어간 날 스테이오더를 개시했지만 외국에는 신청하지 못했다. 당시 스테이오더 효력은 일본 영국 미국 싱가포르 순으로 인정받았다. 스테이오더를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 파나마 등의 국가는 선박을 가압류하거나 압류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결정효력이 전 세계에 미친다는 점을 들어 “미국에서 스테이오더를 우선적으로 신청하고 우리나라에 신청했으면 선박이 상대적으로 덜 가압류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회생절차개시에 대해 정부와 경영진, 학계와 법조계 등이 면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채무자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법정관리 투자기법 ‘DIP 금융’을 파산절차에서도 최우선으로 변제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진해운은 회생절차 신청 후 하역비 등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이 필요했지만 은행권에서는 차입을 거부했다. 결국 고(故) 조양호 회장이 사재를 출현해야만 했지만 업무상 배임 등의 문제로 물류대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회생절차에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차입자금에 대한 채권을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고, 은행도 채무를 전액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파산절차에서는 우선 변제가 불가능하다. 은행으로선 채무자가 파산할 것으로 보이면 자금줄을 조이게 돼 경영할 여력이 있는 회사를 도산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채무자회생법을 개정해 파산결정에도 채권 변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그는 사전회생계획안 작성과 채무자회생법상 정기선 특성을 별도로 고려하는 내용 등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회생절차를 신청하더라도 회생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류대란으로 이어진다”며 “높은 용선료를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게 채무자회생법의 묘미다. 정기선 산업을 위한 채무자회생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해운물류학회 한종길 교수


경영전문성·해운정책 부실이 파산 자초

한국해운물류학회 한종길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한진해운 파산을 경영적 문제로 접근해 기업경영과 정부의 해운정책 등 2가지를 비판했다.

기업경영적 문제로는 경영진의 전문성 부족과 선박투자 전략의 부재가 원인으로 꼽혔다. 한진해운 경영을 맡은 최은영 전 회장이 해운산업에 전문적 식견을 가지지 않은 비전문 인사를 임원직에 대거 등용하고, 해운시황과 용선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투자를 자행하면서 한진해운이 스스로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영진의 선박투자 전략 부재는 뼈아픈 일이라고 평가했다. 한진해운은 해운 호황기의 막바지에 올라 선박의 가격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 선박투자를 결정하고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신조선을 발주하면서 원가상승과 자금 흐름을 조이는 악순환을 자행했다는 게 한 교수의 분석이다. 해운경기 흐름을 고려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투자전략을 펼치지 않은 게 경영진으로선 최대 실책이라는 주장이다.

정기선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해운정책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한 교수는 “외국 정부는 컨테이너선사가 위기에 봉착하면 자국화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지원을 통해 회생이나 인수합병을 주도했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파산으로 연결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1984년 정부의 해운산업합리화로 많은 기업이 합병되거나 폐업했고, 그 이후에도 조양상선이 문을 닫으면서 국가 수출경쟁력과 대외신인도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떠올랐다.

해운사에게 일제히 적용하는 부채비율 200% 강제적용도 한진해운의 숨통을 조인 요인으로 꼽혔다. 한 교수는 “부채비율 강제적용은 정부의 해운산업 이해 부족에 의해 발생됐고, 이에 따라 선사들은 자선을 매각하고 이를 다시 높은 가격으로 용선해 한진해운 파산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종길 교수는 경영적 측면의 문제점을 토대로 정부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했다. 우선 세계 경기 및 해운시황 예측으로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책 민간 연구소가 한국형 해운시황예측기법을 개발해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정부가 해운의 영역을 시장에만 맡기기보다 해운금융 환경규제대응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에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선사의 위기관리 시스템 개발 ▲전문가집단 위원회 구성 ▲마케팅 및 영업력 확보전략 마련 ▲선대운영의 효과적 전략 마련 ▲해운산업 규제완화 및 제도적 지원책 검토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


고려대해상법연구센터와 한국해운물류학회가 주관하고, 해봉꿈이룸장학재단 한국선주협회 고려대산학협력단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해운물류업계 외 법조계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조양상선 사태 때 그런 엄청난 사태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교훈을 찾지 못했다. 이 연구를 기초로 후대들이 교훈을 찾아 다시는 조양상선이나 한진해운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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